구름 고래

단편 소설 : 파도 본문

고래의 감성/고래의 소설

단편 소설 : 파도

Loel the writer 2018. 11. 18. 21:02

파도

본 소설은 실제 사건에 픽션을 더한 것 입니다. 



암울한 분위기가 교정을 감싼다.
언제나 북적거리던 교실엔 이제 열 명도, 아니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은 반도 있었다.
텅 비어버린 책상마다 놓인 새하얀 꽃들과 작은 노란 리본. 그리고 왠지 모르게 중간중간 얼룩진 편지들.
분명 지금은 수업시간이다. 하지만 반에 있는 사람은 선생과 나. 둘 뿐이었다.
또 어떤 시간엔 선생님마저 들어오시지 않았다. 그저 허공을 바라보는 내게 선생님들은 어떠한 이야기도 꺼내지 않으셨다.
그렇게 여러 수업이 끝났다.

6교시 역사 시간.
들어오시지 못할 선생님을 기다리는 내게 주인을 잃어버린 책상이 물었다.
넌 어째서 이곳에 있느냐고.
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떨구는 것이었다.
끅끅대라는 소리조차 낼 자격이 없었기에 가슴으로 삼켰다.
한참 뒤에 어디선가 나는 물소리에 고개를 드니 창문이 차오르고 있었다. 
차가운 느낌이 들어 발을 살펴보니 이미 복숭아뼈까지 차오른 듯했다. 
물이 다리까지 차오름과 동시에 난 정신을 잃고 그날의 기억에 삼켜졌다.

2달 전, 4 16.
우린 배가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들떠있었다. 행복함에 젖어 핸드폰을 두들기며, 사진을 찍었다.
승객 470여 명을 태운 배는 인천항을 출발했다.

8 50.
배에서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펴졌다. 아주 약간이지만 몸이 기울기 시작했다.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도 느낄 수 있었다
방 안에 덩그러니 놔둔 종이컵이 중심을 잃고 굴러갔다. 어렴풋이 배가 기울고 있음을 깨달았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 같은 방의 친구가 119에 신고했다.
그가 던진 첫 마디는 "살려주세요." 였다.
배가 침몰하고 있음을 알린 그는 해경에게 연결되었다.
54분을 막 지난 시간이었다. 해경은 그에게 위도와 경도를 물었다.
친구는 대답하지 못했다. 해경은 그에게 배의 위치를 물었다. 친구는 대답하지 못했다.
살려달라고. 그저 살려달라고 비는 친구에게 해경은 위도와 경도, 위치를 물었다.
의미 없는 입씨름의 시간이 지나갔다.

8 56.
해경은 그제서야 배의 이름을 물었다. 해경에게 연결되고 약 3분이 지나서야 배가 침몰 중임이 접수되었다.
친구는 전화를 놓지 않았다. 다른 친구는 허둥지둥 우왕좌왕 방을 걸었다. 누군가 나지막이 외쳤다.

"우리 살 수 있겠지..?"

또 누군가 당당히 대답했다.

"! 무슨 그런 당연한 말을 해!ㅋㅋ "

그 사이에 멀었던 유리창과 바다는 이제 조금이면 맞닿을 듯 가까워져 있었다.
그때 방송이 울려 퍼졌다.
"승객 여러분들은 당황하지 마시고 지금 나오는 방송을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현재 돌아다니시는 승객분들이 계신데, 
돌아다니시면 선체의 중심이 흔들려 침몰의 진행이 빨라지니 제자리에 앉아 구조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여자 선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다. 그녀는 침몰을 정의 내렸다.

9 20.
선체가 잠기기 시작한 부분의 유리창에 금이 갔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물이 조금씩 흘러들어왔다. 
비교적 끝 방인 우리 방은 조금이지만 물에 잠겼다.
발이 약간 잠길 듯이.
발에 물이 닿자 나는 생각할 새도 없이 복도로 뛰쳐나와 기울어진 계단을 향해 뛰어갔다.
다른 방에서 나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미친놈이 뛰어가? 아까 방송 못 들었어?"

난 그 소리를 무시한 채 계속 달려 계단에 도착했다. 계단을 발로 밀듯이 올라갔다.
내 한 걸음에 배가 바다로 더 깊숙하게 잠기는 것 같았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가슴은 뭔가가 내리눌러 터질 듯이 답답했다.
계단을 오르자 계단이 나왔다. 또 계단을 오르자 계단이 나왔다. 계단에 계단이 이어졌다.
실제로는 꽤나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내게는 그 시간이 영원과도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내 뛰어가는 소리에 자극을 받은 몇 명이 보였다. 그렇게 영원의 순간이 끝이 났고 난 배의 갑판에 닿았다.
두려움에 질린 채로 기둥이나 안전봉을 잡고 있는 친구들이 보였다.
그때 선생님과 어떤 학생이 자신의 구명조끼를 내게 그리고 나를 뒤따라 올라온 친구에게 주고 계단을 내려갔다.
본인이 앞장서서 친구들에게 구명조끼를 주겠다고 하면서.
나는 숨을 헉헉대며 거세게 선체를 때리는 파도를 바라보았다그리고 안전봉을 잡고 저 멀리 다가오는 배를 바라보았다
그 배에 내 몸을 실었다. 낚싯대가 보였다. 우리를 끌어주던 선원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그 말과 함께 난 정신을 잃었다.

4 17.
눈을 떠보니 하루가 지나있었다. 대합실의 TV에는 바다를 향해 한없이 외치는 부모들의 모습이 나오는 뉴스가 틀어져 있었다. 
우리 아들은 꼭 살아 돌아올 거라고. 우리 딸은 엄마랑 약속했다고. 우리 형은, 누나는 꼭 올 거라고..
자세히 귀를 기울이니 대합실의 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곡소리가 울려 퍼져 누군가의 울음소리와 합쳐졌다
대합실에서는 부모들이 자신의 아들딸을 찾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자식을 찾은 부모는 그들을 안고 있었다.
난 그들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소중한 자식이 죽은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것을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배를 가로질러 달리는 바람에 배의 침몰이 가속화된 것임을 말할 수 없었다. 나 때문이다. 모두 나 때문이다..
가슴의 어딘가가 불타오르는 듯했다.
그 사이에도 다른 부모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을 메아리를 외치고 있었다.

바다는 짓궂게도 그들을 돌려주지 않았다. 함께 탄 배에서 함께 내리지 못했다.
짧지만 행복했던 추억은 영원히 멈춰 시간을 타고 흐르지 못했다. 거센 파도에 삼켜졌다.
그들은 나비가 되었다. 다만 아직 차가운 바다라는 고치를 찢지 못할 뿐이다.

나 또한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던 중, 기억의 파도에서 내뱉어졌다.
하지만 교실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시간은 2달 전에서 멈춰있다

암울한 노란 파도가 학교를 감싸고 있었다.



4월 16일, 피지 못한 채 져버린 그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